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신강성 공산당원 숙청 사건 (문단 편집) === 국민정부의 대응 === 7월 13일 [[허잉친]]이 <수복신강주권방략>을 장제스에게 제출하였다. 허잉친은 성스차이가 어디까지나 이익을 위해 소련에 협력한 인물이지 진짜 공산주의자가 아니고 그를 섣불리 제거했다간 중국공산당이 그 공백을 노려 신강성을 장악할 수 있으니 일단 성스차이의 요구를 국민정부가 수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허잉친의 주장은 다음과 같았다. ||소련은 성스차이와 중앙의 관계가 멀어지도록 도발하였고, 이로써 신강에 괴뢰정권을 세워 자신들의 신강에서의 권익을 보호하려고 하였다. 또한 성스차이가 신강에서의 정권을 상실하면 오히려 다시 친공세력이 그 자리를 대신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그가 필요로 하는 원조를 제공하여 소련이 감히 폭동을 일으키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서북 변방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 중소동맹의 기회를 이용하여 신강 정권을 수복하고 한편으로는 성스차이는 그 지위를 유지하게 하는 대신 점차 중앙화하도록 한다. 그러한 후에 국민정부는 [[간쑤성|감]][[칭하이성|청]][[티베트 자치구|장]]변경의 군비를 신속히 강화하고 모든 필요한 준비를 갖추어 다시 확실히 서북 지역을 통제할 수 있는 때를 기다린다.|| 7월 16일 소련 정부 대표이자 주중 소련대사인 알렉산드르 판유스킨이 충칭을 찾아와 성스차이의 이상한 태도에 대해 장제스에게 직접 경고했다. >판유스킨: "성 독판이 오늘날 소련 정부에게 하는 태도를 통해서 보면 그의 뒤에는 다른 이적 세력이 있다고 추정되며 그의 좌우에 간첩도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 편지로 우리가 그에게 한 권고와 그가 과거에 한 일을 알게 되는 데 반드시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장제스: "성 독판의 태도가 편지 안에 상세하게 나타납니까?" >판유스킨: "이 편지 안에 있는 내용은 그의 모든 행동과 태도를 묘사한 것입니다." >장제스: "귀 정부는 신강의 모든 사건에 관하여 우리 충칭정부와 교섭해야 하고, 성 독판과 독자적으로 담판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대사가 오늘 말한 일에 대해서는 이 편지를 상세히 보고 나서 추리하겠습니다. 우리나라 신강성 당국은 과거에 불합리한 상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바로 잡기 위해서 이후로 양국은 신강성에 관한 일들은 귀국 정부와 우리나라 중앙정부가 직접 상의할 것이며, 다시는 신강성 당국과 교섭을 하여 어떤 오해도 발생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판유스킨이 장제스에게 전달한 편지는 과거 몰로토프가 성스차이를 질타하는 내용이었는데 성스차이가 1941년 1월에 신강소비에트공화국의 수립을 소련에 타진했다는 것까지 폭로하였다.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최근 신강과 모스크바 두 지역에 성스차이를 살해한 것이 성스차이라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 그러나 소련은 이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우리가 추측하기에는 각하의 좌우에 중국을 적대시하는 제국주의 간첩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중소관계와 신강성을 파괴하려고 하면서 각하를 꼭두각시로 만들려 하고 있다. 1941년 1월, 각하는 우리 사람에게 '중국에서 이탈하여 신강에 신강소비에트공화국을 세우고 소련에게 가입하겠다.'고 이야기하였다. (...) 또한 신강을 소비에트화하는 것은 전 중국을 소비에트화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소련 정부는 그 말을 듣고 수년 전부터 말했듯이 각하의 의견을 반대하였다. (...) 소련정부는 문제를 정상적으로 해결하여 우리들의 관계가 악화되지 않기를 바란다.|| 장제스는 소련과 성스차이가 반목 중이었음을 알아차렸고 허잉친의 방안을 채택해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신강성의 주권을 회수한다고 군부에 하달했다. * 1. 우선 제42군을 란저우에서 서안옥문으로 진주하여 하미의 소련군 제8단을 제어한다. * 2. 외교특파원을 파견하여 외교권을 중앙으로 회수하여 신강에서 우리의 외교를 정상화한다. * 3. 신강 내 공산당을 숙청한다. * 4. 소련 군대를 신강에서 철수하게 한다. * 5. 소련과 중공에 대한 첫번째 조처로 디화의 비행기제조공장을 회수한다. 기타 당무특파원 교육청장과 성부 비서장 인선을 확정한 후 우선 그들을 신강으로 보내 성스차이와 만나 다시 성스차이에게 전체 임무를 맡길 것인지 고려한다. 이에 맞추어 국민정부는 서북지역의 개발과 주민 이주정책을 공포하였다. 이는 독소전쟁 발발 후 중국에 대한 소련의 지원이 급감하고 [[중앙아시아]]에 주둔한 소련 군대가 대거 유럽 전선으로 이동한 것의 결과이기도 했다. 이어 장제스는 34집단군 총사령관 [[후쭝난]]에게 섬서와 감숙의 군단을 3개 집단군으로 개편하여 서북 방어선을 공고히 하라고 지시하는 한편 감숙성 주천에 국방공사를 설치하여 중공과 소련의 통로를 단절하게 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